▲현 노천극장 부지는 대규모 잔디 광장이 들어서고 옛 소라관은 대운동장 남측(A)에 만들어진다(사진제공: SPACE21 건설사업단)

#.하나의 공간 속에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이 쌓이게 된다. 때문에 특정 공간의 형태가 대규모로 변화하게 되면 그 공간에 스며있던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들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주로 빈 부지를 활용해 건물이 신축되는 국제캠퍼스의 종합개발 계획과는 달리 기존의 캠퍼스 배치를 뒤바꾸는 형태의 서울캠퍼스 종합개발계획은 여러모로 돌아볼 여지가 많다. 그래서 대학주보는 앞으로 3회에 걸쳐 SPA CE21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는 공간과 신축 건물들 가운데 보존되는 공간, 그리고 새로 탄생하는 공간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이번 호에서는 그 첫 번째 순서로, SPACE21 사업으로 사라지게 되는 노천극장에 대해 살펴본다.

시대상이 담긴 노천극장

지난 9월, 서울캠퍼스의 SPACE21 사업 조감도가 발표됐다. 신축되는 건물의 비주얼과 그것이 만들어낸 캠퍼스의 새로운 풍경에 구성원의 많은 눈길이 쏠렸다. 그런데 조감도를 본 구성원은 오래지나지 않아 현재의 캠퍼스 모습에 비춰 낯선 풍경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오비스홀 바로 앞으로 펼쳐져 있는 널따란 잔디밭이 그것이다. 본래 이 자리는 노천극장이 있던 자리다. 54년의 세월동안 여러 단과대학 사이에서 다양한 구성원의 삶 가까이에 있던 노천극장이 이번 SPACE21 사업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본래 서울캠퍼스에는 운동장이 두 개 있었다. 현재의 대운동장과 노천극장 자리에 있었던 소운동장이 그것이다. 하지만 학교의 규모가 커지고 구성원이 증가하면서 점차 문화공연을 활성화시킬 문화기반시설의 필요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지난 1958년에 소운동장 자리에 개방형 야외극장형태의 노천극장을 설치키로 하고 공사를 시작했고, 1년만인 1959년에 완공했다. 이후 1973년에는 노천극장 바닥에 테니스 코트가 설치되면서 노천극장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형태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한 원형 콘서트홀 ‘Hollywood Bowl’을 벤치마킹한 이 노천극장은 시대별로 다양한 역할을 하며 구성원의 시대상을 담는 장(場)이 됐다. 60년대에서 70년대까지는 입학식이나 학원제 등 학내 구성원의 단합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던 노천극장은 80년대에 이르러 민주화 운동의 집결지이자 중심지로 기능하며 학내 집회의 공간으로 애용됐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조용히 앉아 독서를 하며 여유를 만끽하던 사색의 자리이자 통기타 하나를 둘러맨 채 벗들과 음악을 나누고 시대를 노래하던 낭만의 자리가 됐고 나란히 마주 앉아 풋사랑을 속삭이던 설레는 데이트의 공간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노천극장의 쓰임새는 날로 위축돼 갔다. 전체 학생이 모이는 대학문화가 사라지고 민주화 관련 담론이 대학생의 주요 이슈에서 벗어난 이후, 노천극장은 주로 대동제 공연이나 각종 기념식 등의 행사 공간으로 쓰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무대와 객석 사이에 거리가 너무 넓었던 탓에 모두가 함께 호흡하는 활발한 상호작용은 불가능했다. 자리에 앉아 박수만 치고 점잖게 앉아 구경하는 축제가 아닌 모두가 일어나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는 축제를 원했던 학생들은 소라관 앞에 가설무대를 설치하는 방안을 생각해냈지만, 이러한 노력은 1999년 이후 평화의 전당이 완공되면서 빛이 바랬다. 점차 활용의 폭이 줄어들던 노천극장은 결국 SPACE21 사업을 계기로 지하에 차량이 들어차고 지상에 잔디가 펼쳐진 평탄한 광장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잔디광장이 생기면서 동선의 효율성은 생겨날지 모르겠지만, 시대상이 그대로 추억으로 녹아있는 노천극장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그 시절들을 기억하는 경희인들에게 있어 참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우리학교 동문인 안숭범(국어국문학 98) 강사의 아쉬움 섞인 소감처럼 지금 우리는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가 쌓아 올린 푸근했던 한 공간의 소실 앞에 서 있다.

공간성과 장소성, 그리고 기능성까지

그렇다면 노천극장은 영영 우리학교의 사라진 건축물로 남겨질 것인가. SPACE 21 조감도를 기획·설계한 대표 건축가인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의 이현호 교수 역시 노천극장에 얽힌 많은 구성원의 기억과 추억이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래서 노천극장의 공간성과 장소성을 보존하되, 세월이 흐르며 약화된 기능성까지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새로 생겨나는 것이 대운동장 남쪽 방향에 신축되는 소라관(A)이다.

이 교수의 말에 의하면 현 노천극장 부지는 동의마당과 대운동장 사이를 이을 하나의 큰 허브광장으로 조성된다. 또 기존 노천극장 소라관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대운동장 남쪽에 새로운 소라관을 신축하게 된다. 덧붙여 이 교수는 “데이트의 공간이자 젊음으로 기억되는 노천극장의 장소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고 이에 ‘소라관’이라는 이름까지 함께 옮길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SPACE21 사업을 통해, 현재의 노천극장이 지닌 상징성과 기능성은 대운동장의 신축 소라관으로 이양되고, 소통하고 즐기며 사색하고 낭만을 나누던 풍경은 새로운 잔디 광장이 담당할 모양새다. 이제 노천극장은 본연 그대로의 상징적 의미는 이어가면서도 그들이 지녔던 단점을 보완해 변화해야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새로운 잔디광장과 신축 소라관이 구성원들의 활발한 사용을 통해, 우리학교의 새로운 상징 건축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지난 1964년 제9회 학원제가 열린 노천극장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