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공간 속에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이 쌓이게 된다. 때문에 특정 공간의 형태가 대규모로 변화하게 되면 그 공간에 스며있던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들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주로 빈 부지를 활용해 건물이 신축되는 국제캠퍼스의 종합개발 계획과는 달리 기존의 캠퍼스 배치를 뒤바꾸는 형태의 서울캠퍼스 종합개발계획은 여러모로 돌아볼 여지가 많다. 그래서 대학주보는 3회에 걸쳐 SPACE21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는 공간과 신축 건물들 가운데 보존되는 공간, 그리고 새로 탄생하는 공간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이번 호에서는 그 두 번째 순서로, 우리학교의 고유한 가치·철학을 지니고 있는 랜드마크 중 SPACE21 사업 이후에도 보존되는 것들에 대해 살펴본다.

지난 9월 새로 발표된 서울캠퍼스의 SPACE21 사업 조감도를 바라보며, 구성원의 눈길은 주로 신축되는 건물의 비주얼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캠퍼스의 새로운 풍경으로 쏠렸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새로운 풍경 사이사이에는 우리학교의 철학과 가치관을 웅변하고 있는 경희의 ‘랜드마크’들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학교의 교육철학을 드러내고 있는 ‘선승문’, 우리학교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경희금강’, 그리고 우리학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경희의 탑’이 그것이다. 공개된 세 장의 조감도들에선 이 랜드마크들이 자세히 묘사되지 않은 탓에 일부 구성원은 이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질 것을 걱정하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스페이스21 사업은 이들 랜드마크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대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는 선승문(善勝門)은 경쟁에서 단지 승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경쟁해 선하게 승리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우리학교의 교육철학을 담고 있는 문이다, 1967년 완공된 선승문은 형태적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미를 갖추고 있으며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적당한 크기, 그리고 단순하지만 기품 있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 선승문은 SPACE21 사업 초기에는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확정된 SPACE21 사업계획에서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문은 문의 기능을 유지할 때 생명력을 이어간다’는 판단 아래, 구성원들이 드나드는 문으로서의 기능 역시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서울캠퍼스 SPACE21 조감도를 기획·설계한 홍익대학교 건축대학의 이현호 교수는 이에 대해 “서울캠퍼스는 자연과 인간의 공간이 서로 아기자기하게 맞물리면서 동선을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하면서 선승문의 신규 동선 설계가 서울캠퍼스의 콘셉트를 이어받고 있다고 말한다.

“선승문을 통해 구성원은 이과대학·간호과학대학 건물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이 동선은 계단을 이용해 4층 건물의 옥상정원이나 카페 등으로 이어지고, 이 동선은 다시 대운동장으로 이어지는 등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동선 구조를 통해 구성원은 각각의 지점에서 서로 다른 풍경들을 맞이하게 되며, 이런 구성원의 경험은 곧 아기자기한 서울캠퍼스 본연의 매력을 계승하는 주요 콘셉트로 기능할 것입니다.”

한편, 오늘날 크라운관과 학생회관 앞에는 인공 바위산이 조성돼 있다, 그 이름은 ‘경희금강(慶熙金剛)’이다. 금강산의 봉우리, 계곡, 바위들을 우리학교로 옮겨왔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1973년 10월에 조성된 경희금강은 돌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크기, 색깔, 무늬에 따라 조화롭게 배치되어 금강산의 전체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곧 저마다의 가치와 능력을 지닌 경희 구성원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우리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만들어간다는 함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자부심 넘치는 이런 의미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경희금강의 의미는 거의 단절되다시피하여, 안타깝게도 ‘아는 사람들만 아는 랜드마크’가 돼버리고 말았다.

SPACE21은 이런 경희금강이 다시금 구성원 곁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 듯 하다. SPACE21 사업 후 경희금강은 여러 개의 동선이 모이게 되는 열린 광장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게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광장과 같이 비어있는 공간은 구성원의 쓰임새와 사용하는 시간이 쌓여감에 따라서 미리 계획되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하면서 경희금강의 향후 입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희의 자부심을 담고 있는 경희금강은 음대 앞 광장의 랜드마크로 기능하면서, 광장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빚고 쌓아갈 미래 경희인의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기억의 표지가 되어 가리라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선승문과 경희금강의 미래가 이렇게 명쾌하게 계획돼 있다면, ‘경희의 탑’은 보다 나은 배치를 위한 고민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단계에 있다.

선승문에서 노천극장 쪽으로 올라가는 길 우측 편에 25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는 두 개의 탑, 학생들 사이에서는 친근한 이름으로 ‘마징가탑’이라고도 불리는 이 탑의 정확한 명칭이 ‘경희의 탑’이다. 1979년에 개교 30주년 기념으로 설치된 이 탑은 우리학교가 1960~70년대에 추진했던 밝은사회운동과 잘살기운동을 기념하여 쌍둥이 탑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최초에 기획됐던 SPACE21 사업계획 당시엔 ‘경희의 탑’의 철거가 논의되기도 했지만, 이번에 확정된 SPACE21의 사업안에서는 탑이 지니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감안해서 보존하는 것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설 건물들의 배치를 고려해볼 때 현재 탑이 놓여진 형태가 다소 이질적이기 때문에, 이 이질감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경희의 탑이 놓여 있는 배치는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SPACE21사업은 워낙 대규모로 캠퍼스의 형상이 뒤바뀌게 되는 큰 규모의 사업이기 때문에, 경희의 탑이 전체적인 캠퍼스의 맥락과 조화를 이루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에 분명하죠. 본래 가치의 보존과 이질감의 최소화라는 두 요소 사이에서 최적의 접점을 찾기 위해 고민을 계속 하는 중입니다”라는 것이 이 교수의 말이다.

아울러 이 교수는 랜드마크도 중요한 보존의 대상인 만큼 ‘경희의 기억’도 보존시켜야할 중요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대운동장이나 경희금강 등지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전경(view)들도 경희가 보존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운동장에서 바라보이는 평화의 전당, 혹은 중앙도서관 상단부와 같은 ‘시각적 경험’은, 60년 경희의 기억이 후대로 보존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때문에 대규모 건물단지를 디자인하면서 건물의 배치와 크기 등이 주요 전경을 가리지 않도록 전략적이고 섬세하게 조절했다는 후문이다.

좋은 보존이란 과거를 보존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기능을 하게 될 랜드마크들이 졸업생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는 공간이 되고 신입생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와 관련해서, 다음호에서는 졸업생과 신입생 모두에게 의미를 안겨 줄 수 있는 새롭게 신축되는 건축물의 의미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