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공간 속에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이 쌓이게 된다. 때문에 특정 공간의 형태가 대규모로 변화하게 되면 그 공간에 스며있던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들도 함께 흔들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주로 빈 부지를 활용해 건물이 신축되는 국제캠퍼스의 종합개발 계획과는 달리 기존의 캠퍼스 배치를 뒤바꾸는 형태의 서울캠퍼스 종합개발계획은 여러모로 돌아볼 여지가 많다. 그래서 대학주보는 3회에 걸쳐 SPACE21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는 공간과 신축 건물들 가운데 보존되는 공간, 그리고 새로 탄생하는 공간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이번 호에서는 그 마지막 순서로 SPACE21 사업을 통해 새로 탄생하는 공간들에 대해 살펴본다.

여럿이 모인 구성원 사이에서 지켜야 하는 규율로 빠질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질서(Order)’다. 이 질서란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되, 구성원이 빚어낸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통일감을 뜻한다. 지난 9월 공개된 서울캠퍼스(서울캠)의 SPACE21 사업 조감도를 관통하고 있는 가치 또한 ‘질서’다. 건물 그 자체가 뿜어낼 개성을 표현하되, 기존에 위치한 건축물과 유기적인 연결이 가능하도록 건설하는 것이 신규 SPACE21 사업의 최대 숙제였다.

질서와 균형, 일관성과 체계

“질서와 균형(Symmetry), 일관성(Coherency), 체계(Hierarchy)라는 4가지 가치를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기존 건축물이 형성한 질서와의 균형을 이루고, 일관성을 지닌 ‘체계’를 갖춘 건축물이야 말로 현대 대학 건물이 진정으로 지향해야할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서울캠 SPACE21 조감도를 기획·설계한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이현호 교수는 이를 위해 아이디어 착상 당시 서울캠 공간들을 연구·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공간들의 유기적 연결이 끊겨있다고 최초로 판단한 공간은 선승문에서 노천극장 쪽으로 올라가는 길, 즉 헐떡고개였다. 공과대학을 향해 걸어올라가는 길인 동시에 중앙도서관과 단과대학을 잇는 중요한 동선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는 그저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힘든 길’ 이라는 인식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헐떡고개가 경희대학교의 풍경과 다소 동떨어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이 교수는 여기에서부터 구체적인 구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구상을 이어가던 도중, 이 교수는 아름다운 자연을 담는 서울캠의 풍경에 주목했다. “서울캠퍼스는 ‘경희랜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봄의 벚꽃동산과 가을의 울긋불긋 물든 단풍 등 다양한 색채감을 지닌 아름다운 캠퍼스입니다.”

건축물에 색을 입히는 것이 이런 경희대학교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 그는 “페인트를 사용한 단순 도색이 아닌 벽돌과 석재, 세라믹과 콘크리트 등의 순수 재료를 사용해 고유의 색을 지니면서도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건물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정된 조감도에 따르면, 헐떡고개는 ‘멀티연구동’ 이라는 ‘시작점’과 ‘글로벌타워’ 옆에 조성될 잔디광장인 ‘끝점’을 이어주는 ‘과정’의 역할을 톡톡히 할 예정이다. 교시탑 부근인 ‘아래 캠퍼스’와 단과대학이 몰려 있는 ‘위의 캠퍼스’를 이어주는 ‘오작교’로 작용하는 것이다. 특히 선승문 주변에는 파라솔을 설치해 “울창한 숲의 한 중앙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여유로움이 생기고, 쉼터 같은 공간이 등장함으로써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 교수는 귀띔했다.

“조감도에 그려내지 못한 이야기도 알리고 싶어”

멀티연구동은 활발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과 더불어 ‘전체 구성원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마련될 예정이다.

멀티연구동에서 발걸음을 돌려 헐떡고개를 걷다보면, 대운동장 뒤편에 위용을 자랑하는 붉은 계열의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지상 10층 규모의 건물인 ‘신축 기숙사’다. 지하 2층과 지상 10층으로 구성된 이 기숙사는 기존 삼의원·세화원의 낮은 수용률을 보완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기존 노천극장의 공간성을 수용하게 되는 대운동장의 특성상 동아리 연습이나 각종 기념식 등 다양한 활동들로 인한 소음문제가 대두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 교수는 “이중창을 설치하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소음 차단에 최대한 신경 쓰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헐떡고개를 다 올라가면, 푸른 잔디 광장과 대비되어 강렬하게 타오르는 붉은색 원통형 건물이 눈에 띈다. 조감도 상에서 구성원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건물인 ‘글로벌타워’다. 이 교수는 “글로벌타워는 멀티미디어 강의실 등 대형 강의 공간과 옥상부의 국제회의 시설 그리고 경희의 가치를 웅변해줄 로비·테라스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있었던 구성원의 다양한 요구사항들로 애초 지향했던 콘셉트가 변형된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조권(日照權)을 비롯해 건설비용, 공사 소요 시간 등 수많은 제약을 풀어내는 것이 진정한 건축입니다. 오히려 그 제약은 건축가에게 큰 기회로 작용하곤 하죠. 다만 건축가의 역할은 아름다운 가치를 담을 그릇을 만드는 것이기에, 이제는 그 그릇을 아름답게 채워가기 위한 구성원의 활발한 소통이 시작돼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건축물과 융화되는 것이 목표”

지금까지 서울캠은 ‘본관’과 ‘중앙도서관’ 그리고 ‘평화의 전당’ 이 세 가지 건축물이 특유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조성해왔다. 그리고 이제 SPACE21 사업을 통해 서울캠에는 다양한 건축물이 들어서게 됐다. 이 건축물들이 각각 고유의 매력을 지니면서도, 기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캠퍼스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길 바란다. 나아가 모든 경희 구성원은 이 ‘변화’를 그저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상호간의 소통을 통해 ‘경희 구성원이 만들어가는 캠퍼스’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해야 할 것이다.